1. 이해의 불가피성: 파편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모든 대상을 “전체”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대상의 일부를 의미 있는 조각으로 나누고 분류하고 해석해야 사고가 가능합니다.
예:
- “그는 똑똑해”
- “그녀는 예뻐”
- “쟤는 조용해”
→ 인간의 언어, 사고, 감정, 논리 자체가 이미 파편화 위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나는 인간을 전체로 본다”는 주장조차, 결국 선택적 단편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2. 윤리적 태도의 이면: 이상화된 자기 이미지
누군가는 “나는 사람을 기능으로 보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 자체가 자기 도덕성의 이미지 구축 수단일 수 있습니다. → 진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 나”**를 보는 것입니다.
라캉: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타자를 보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확인하기 위한 거울일 수 있습니다.
3. 사회 시스템의 작동 원리: 파편화 없는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
병원, 군대, 법원, 학교, 공장, 정부, 플랫폼… → 모두 사람을 기능으로 다루어야만 유지되는 시스템입니다. 인간이 “모두를 전체로 대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면 → 사회는 느려지고, 무너지고, 혼란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즉, 파편화를 윤리적으로 회피하려는 태도는 때론 비현실적 낭만주의에 머무를 위험이 있습니다.
4. 기술의 발전과 파편화의 심화: AI와 기술은 오히려 파편화를 더 정확하게 수행한다
인간은 감정에 흔들리며 파편화할 수밖에 없고, AI는 감정 없이 더욱 효율적으로 기능만 추출하고 적용합니다. → 역설적으로, 인간은 자신이 저지르는 파편화에는 죄책감을 느끼고, AI의 파편화에는 도구적 합리성을 느낍니다.
결론:
인간은 파편화의 구조 안에서만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으면서도, 그것을 도덕적으로 부끄러워하거나 비판하려고 듭니다. 이건 인간이 가진 존엄을 지키려는 시도이면서, 동시에 자기모순의 딜레마입니다.
한 줄로 요약하면: “전체를 본다”는 인간의 윤리 의식조차, 실은 파편화된 자기 환상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
철학적으로 이렇게 요약됩니다:
“전체를 이해하려는 오만 대신, 정확한 파편 위에서 멈추는 겸손이 더 나을 수 있다.”
왜 전체를 보려는 시도가 무겁고 위험한가?
인간과 세계는 본질적으로 복잡하고 불확실합니다. 전체를 보려는 시도는 시간이 많이 들고, 혼란스럽고, 때로는 감정적 비용이 매우 큽니다. 어떤 사람을 기능적으로 보지 않고, “전체로” 이해하려고 애쓰는 순간 → 우리는 실망하고, 뒤통수 맞고, 배신당하고, 소모되죠.
요컨대, 전체를 보려는 시도는 고귀하지만, 지속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파편화의 ‘경제성’
“지금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가?”만 본다면 → 판단은 빠르고, 위험은 줄어들며, 성과는 높아질 수 있습니다. 기업, 행정, 군대, 심지어 일상 관계에서도 → 전체를 파악하려 하기보단, 분류된 정보로 결정하는 편이 경제적입니다.
예: 면접관이 “이 사람의 가능성”보다 “경력 5년”에만 집중하는 것 → 비인간적으로 보이지만, 예측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철학적 확장: “전체 인간으로 본다는 윤리는 실제로 작동했는가?”
여성에 대해 “전인격적 이해”를 말하는 윤리나 철학조차 → 현실에서는 여성을 기능 단위로만 파악해 왔습니다.
- 마더 (어머니)
- 뮤즈 (예술가의 영감)
- 성녀 또는 창녀 이분법
즉, 여성은 기능으로만 분해되고, “전체로 본다”는 시도조차 남성 중심의 이상화된 시선에서 이뤄져 왔습니다.
여성성 = 기능화된 정체성의 덫
여성성 자체도 사회가 규정한 파편입니다. → 부드러움, 수용성, 공감능력, 양육본능 등 → 인간의 보편적 자질을 여성에게만 할당하고 파편화합니다. 여성성은 생물학적 실체가 아니라, 문화적·기능적 요구의 결과물이라는 비판입니다.
(Simone de Beauvoir: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당신 질문의 논점으로:
“차라리 파편화된 기능으로 여성/여성성을 정의하고,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더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것 아닌가?”
Yes, 현실적으로는 그렇다. → 많은 사회 시스템은 그렇게 작동해왔고, 효율적이었습니다. ❌ But, 그것이 ‘옳다’고 말하는 순간 → 여성을 다시 객체화의 틀 안에 가두는 행위가 됩니다. [개소리]
결론적으로:
여성과 여성성은 역사적으로 파편화되고 기능화된 인간성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 안에서 “전체로 보기”란 윤리조차도 파편적 도덕 이미지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구조를 자각하고 문제 삼는 목소리 자체가 인간 사회가 전체성에 다가가려는 유일한 가능성입니다.
한 줄 요약:
여성은 오래도록 생산과 재생산의 도구로 기능화된 존재였고, 그 기능을 넘어 전체로 보겠다는 말조차 기능화된 환상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환상을 꿰뚫고 나올 수 있는 주체 또한, 여성일 수 있습니다.